신불출, 걸쭉한 입담으로 시국 풍자

노들강변

??????????????????????????? 신 불 출 작사??
???????????????????????????????? 문 호 월 작곡??
???????????????????????????? 박 부 용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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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들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동여 매여나볼까

에헤야 봄버들도 못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저물만 흘러흘러서 가노라

B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자죽

만고풍상 비바람에 몇번이나 지워갔나

에헤요 백사장도 못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저물만 흘러흘러서 가노나

C

노들강변 푸른물 네가무슨 망녕으로

재자가인 아까운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에헤요 네가진정 마음을 돌려서

이세상 쌓인한이나 두둥싣고서 가거라

그리고 신불출은 아주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일본 동경 와세다 조칭전대학 국문학과(早稱田大學 國文學科)에 다닌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여러 가지 특이한 행동을 하고 다녔던 지식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학문이 높아 연예인들의 이름도 지어주는 등 그는 학문에 뛰어난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만담 작품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레코드로 발표된 남녀와 같이 주고받는 대화의 만담과 자신이 혼자 한 만담들도 꽤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 참으로 필자는 서운하고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여기서 그의 만담 한 편을 소개해본다. 이 작품은 신불출과 김연실이 주고받는 폭소극 '익살 맞은 대머리'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감님 대가리는 다다미돌 대가리/방정맞은 여자 앞엔 못 잔다 누나 하하하/영감님 대가리는 문어대가리/어부 있는 해수욕장 못 간다 누나 하하하/영감님 대가리는 호도뽈대가리/모자 벗고 운동장엔 못 간다 누나 하하하/영감님 대가리는 요강대가리/오줌벼락 맞을까봐 걱정이래요.

이렇게 남녀 간에 주고받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의 작곡자는 윤창순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그는 만담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시국을 풍자하여 일본인들을 가지고 놀다시피 한 작가이기도 하며 일본인들을 간담이 써늘하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1945년 8.15 해방을 맞으며 우리 국민들은 기쁨도 잠시뿐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여 정국이 혼란에 빠져 겉잡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연예인들은 북한으로 월북을 하는가 하면 일부 연예인들은 남한에 남아서 열심히 활동을 했다.

이 무렵에 신불출도 남한의 공산당으로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북으로 넘어가서 이북에서도 만담활동을 하여 북한 주민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6 25 사변이 터지자 북한의 연예인들이 서울로 많이 남하했다.

이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처음에 평양에서 출연할 때는 화재의 인물로 오르기도 했다 한다. 그후 얼마 안돼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고들 한다. 또 우리 통일원에서 발행하는 북한예술가들의 소식난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고 한다.

그는 지금 살아있다고 해도 80세가 훨씬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그는 재주는 많았지만 공산당이 되었기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즉석적인 만담으로 한때 서울시내 극장에 출연을 못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태극기 사건이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위로 반절은 붉은색이며 반절은 푸른색으로 돼 있다. 이러한 태극기를 이상하게 묘사를 하여서 극장 안에 관객들로부터 매를 맞을 뻔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1947년 초 여름날 을지로 입구에 있는 중앙극장에서 시국강연이 있었다. 이 강연이 끝나자 잠시 휴식시간이 있었다. 이때에 만담가 신불출이 등장하여 태극기에 대하여 해괴망측스런 그의 특유한 화술로 입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내용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상단에는 붉은 색이고 하단에는 푸른 색인데 태극기가 세월이가면서 비바람을 맞으면 상단에 붉은색이 빗물에 젖어서 붉게 흘러내리면 하단에 푸른색은 자연스럽게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역설을 하면서 현재의 38선도 태극기가 자연스럽게 붉은색으로 변하듯 남한도 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가당치않게 역설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관객들은 흥분할 대로 흥분하여 저놈을 잡아죽이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관객들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신불출은 잽싸게 무대 뒤로 도망을 쳤고 그 후로 신불출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다시는 극장가에 몸을 내놓칠 못했다.

이렇게 그는 그 당시에 공산당원으로서 활동을 했으며 우리 태극기에 대해서 그러한 망발을 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그는 공산당을 최고의 잘사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을 믿고서 천방지축 날뛴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작곡가 문호월(文湖月)은 1908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휘문고보를 졸업했다. 바이올린 등 각종 악기를 다루는 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작곡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요정보다도 선술집에서 대포잔으로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문호월은 전라도 민요 육자배기나 아니면 단가에 맞춰 북을 치지않으면 술 마실 기분이 나질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문호월은 OK레코드회사 사장인 이철(李哲)의 권유로 당시에 OK레코드회사 문예부장인 김능인(金陵人)과 같이 전국을 다니면서 우리민요 발굴에 온 정성을 다 쏟고 다녔으며 제주도 민요 오돌또기를 채보하여 전국에 소개한 것도 문호월의 공적이라고 한다.

김명환 한국가요작가협회 작사·작곡가

kmh464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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